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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취미1. 글쓰기

무해한 취미생활, 글쓰기 7. 나를 부르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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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일주일에 한번 서대문 한옥책방 '서울, 시간을 그리다'에서 진행되는 글쓰기 모임에서 쓰고 나눈 글입니다>


신혼여행으로 다른 커플들이 하와이 마우이 섬의 로맨틱 여행을 선택 했을때, 나는 남편과 빅아일랜드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옆에서 용암이 끓어넘치는 것을 구경했다. 

 

마음이 복잡할때는 제임스웹 망원경 우주 사진을 수시로 꺼내본다. 

무섭고 아름다운 우주

 

혼자 밥먹을 때는 디즈니 플러스를 틀어 코스모스를 재생한다.

코스모스, 우주 다큐멘터리

 

거대한 자연과 우주 앞에서 내 존재가 이 세상의 먼지, 티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찮아지는 기분이 좋다. 그것들에 압도당하고 있으면 향후 커리어와 같은 세속적인 걱정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영적인 의문도 어느덧 사라지게 된다.  

 

잘 다듬어진 식물원이나 정원, 서울 근교의 산에 멋들어지게 깔린 데크 길을 좋아하지 않는다. 작년 이맘때 갔던 제주도의 원시적인 숲과 오름들이 그리워진다. 첫 회사 입사동기 네명이서 아이들을 남편들에게 맡기고 1박 2일로 떠난 여행이어서 더 그리운것일 수도 있겠다. 하루에 2만보가 넘게 걸으며 1박 2일 동안 3개의 오름과 2군데의 곶자왈들을 방문했었다.

서영아리 오름에서는 람사르 습지를 보겠다고 갈대를 해치고 걷다가 조난당할뻔 하기도 했다. 다행히 오름 전문 등반하시는 분을 만나 길을 물었는데 그분께서는 여기 맷돼지가 자주 나오니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가만히 서있으라고 하셨다. 결국은 해가 지거나 정말로 맷돼지를 만날까 무서워 람사르 습지 근처에도 못가고 내려왔다. 

서영아리 오름 가는 갈대밭

그날 저녁, 최자도 사장님께 읍소해야 성공한다는 털보네 식당에서 운좋게 먹고 마시고 다음날 겨우 일어나 1시간만 걸어도 된다는 환상숲 곶자왈에 갔다. 

원희룡 맛집 지도에도 나오는 털보네 횟집. 영롱.

 

곶자왈은 제주말로 숲을 뜻하는 곶과 암석과 가시덤불이 엉켜잇는 자왈을 합성한 말이라고 한다. 그 뜻에 맞게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한곳에 모여서, 용암이 흘러 굳은 돌과 나무 뿌리, 덩굴들이 서로를 휘어감고 통과하고 있었다. 해설사 분 말씀으로는 나무가 우세할때는 밑의 덩굴들이 빛을 못봐서 죽고 덩굴들이 우세할때는 나무들이 죽는단다. 그렇게 자연의 법칙에 따라 다듬어 지지 않은, 정말 그대로의 원시림이었다. 

2021년 12월 23일 환상숲 곶자왈.

 

어느덧 다녀온지 일년이 지났다. 소화제를 먹으면서 더 먹으라고 서로를 채찍질하고 더 놀아야 한다며 서로에게 자양강장제를 퍼먹였던 그날 그곳에 친구들과 다시 가고 싶다. 다음에는 서영아리 오름의 람사르 습지를 꼭 보고 싶다. 더 많은 곶자왈에서 압도되는 느낌을 느끼며 헤매이고 싶다. 

 

그곳에서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그 기억을 하면서도 행복하고, 다음 여행을 기약하면서 더 행복함을 느낀다. 같이 여행갈수 있는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2만보나 걸을 수 있는 내 건강에 감사하고, 엄마가 여행가도 찾지않는 아이들에게 감사하고, 기꺼이 보내주는 남편에게도 감사하고,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음식들에도 감사한다.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로 태어난 김에, 이왕이면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가장 행복한 티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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