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해한 취미1. 글쓰기

무해한 취미생활, 글쓰기 1. 만화책

728x90

<해당 글은 일주일에 한번 서대문 한옥책방 '서울, 시간을 그리다'에서 진행되는 글쓰기 모임에서 쓰고 나눈 글입니다.>

 

 


2022.10.12 만화책 

 

 만화책 읽는 것도 독서로 쳐준다면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독서를 한 때는 초등학생 시기다. 활자라면 기겁을 하는 동생과 저녁 설거지를 하는 엄마를 두고 항상 아빠와 나 둘이 같이 일주일에 대여섯번 아파트 상가 책 대여점에 갔다. 대부분 아빠는 무협지를, 나는 만화책을 빌렸다.

 

아빠는 딱히 내 책에 관심을 두지 않아 내가 읽으면 안 좋을 것(?) 같은 섹시보이, 오렌지 보이(꽃보다 남자 해적판)등을 잔뜩 볼수 있었다. 물론 아빠의 무협지도 딸에게 독서 취향을 운운할 만한 고급스러운 내용은 아니였겠지. 

거의 매일가는 탓에 안 읽어본 만화책이 없어 나는 항상 주인 아줌마에게 직행하여 신간을 달라고 했었다. 아주머니는 내 앞에서 새 책 위에 대여점 이름이 박혀있는 도장을 찍어 주셨다. 우리 상가에 있던 이 대여점 옆에는 켄터키 치킨과 방앗간이 있어 책에서는 항상 기분 좋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베어 새 책 냄새와 어우러진 독특한 냄새가 났다.  

 

집으로 돌아오면 쇼파에 누워 과일을 먹으며 둘이 같이 빌려온 책을 낄낄 거리면서 봤다. 엄마는 둘다 쓸데없는 책을 읽는다며 가끔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마지막 화살은 항상 만화책 조차 읽지 않는 동생에게 갔다. 

  

만화책이야 몇권을 빌리든 그날 다 읽었기 때문에 빨리 읽고 나서는 다음날 아침이 빨리 오길 기다렸다. 내 만화책을 가져가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 빌려온 만화책을 바꿔볼수 있으니까! 잠자리에 누워서 다음날 학교에서 어떤 순서로 만화책을 돌려봐야 10분 안에 다 읽을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 해보기도 했다. 물론 선생님한테 걸리지 않아야 하는 미션을 넣어서 더 정교하게 상상해야 했다.

 

큰 아이는 학교에 다녀와서 손을 씻자마자 노트북을 켠다. 밀리의 서재에 들어가 자기가 보고 싶은 만화책을 찾아 보면서 쇼파에 앉아 이전의 나처럼 키득거린다. 문득 이 아이는 나중에 커서 어떤 기억을 가질까 궁금해진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그 책들, 친구가 어떤걸 가지고올까 하는 두근거림도 못느낄 테고, 선생님한테 걸릴까봐 노심초사 하는 기분도 모를테고... 하지만 뭐 이 아이도 제 나름대로의 추억이 있을것이다. 책을 읽을때 내가 가져다준 코코아의 온기나 냄새, 눈 나빠진다고 멀리서 보라고 하는 내 잔소리, 다른 거 보자고 징징거리는 동생의 말.... 최근에 뭘 읽었는지 밀리의 서재 목록을 뒤져봤더니 온통 고양이 관련된 책이다. 아마도 고양이 키우자고 조를거 같은데 못키우는 핑계를 생각해놔야 할것 같다.

 

<서울, 시간의 그리다의 글쓰기 공간>

 

반응형